좋은 생선이 주어지면 중국인은 튀기고 일본인은 회를 뜨고 한국인은 국물을 낸다.
동북아시아 3개국의 음식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 국민의 국물 사랑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같은 쌀 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국물이 극강으로 발달한 건 한국뿐이라고 한다
유독 우리나라가 국을 사랑하고 이 발달된 이유에 대해서는 알아보자.
우리나라가 국물 요리가 발달한 이유에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3가지 정도로 나뉜다.
우선 ‘가난 때문에 여러 식구가 먹기 위해 재료로 국을 우려내 나눠 먹었다’는 설과 거친 곡물로 만든 밥은 그 자체로 별다른 맛도 없고 먹기도 다소 거북했기 때문이라는 설, 그리고 끊임없는 외부로부터의 침입 때문에 난리통에서 쫓기며 국에 밥을 말아 마셨기 때문에 국이 발달했다는 설 등이 있다.
연유야 어찌 되었건 우리 민족의 예로 국을 좋아했다는 것만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다.
국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면....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동천왕이 성격이 너그럽고 인자하였는데 왕후가 성격 테스트를 해보려고 시종에게 밥상을 올릴 때 왕에게 국을 엎어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육식을 금했던 고려 시기에 송나라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 돼지로 끓인 국을 대접했는데 도축 솜씨가 형편없어서 맛이 없었다 는 사신의 보고서 내용도 있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는 고대 중국의 예법에 따라 밥 국 반찬 구성을 기본으로 했다는 내용 등 국에 대해 꾸준한 기록들이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식당에서 먹는 국밥은 이때까진 등장하지 않았다.
사극 드라마에 보면 어느 시기에는 시장 주막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는 장면이 나오지만 이런 모습의 주막은 조선 후기에 등장했다고 한다.
원래 국과 밥은 중간에 말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처음에 각자 그릇에 담아내는 것이 정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조선 후기 농업 국가였던 조선의 상공업이 발달하고 전국적으로 장시가 발달하여 시장 상인, 장 보러 나온 주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돌뱅이 등 많은 사람들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이때 이들에게 후딱 답을 내주기 위해 밥을 미리 짓고 국도 끓여놓은 뒤 밥과 국을 함께 말하는 것이 바로 국밥이었다고 한다.
이때 우리만의 독자적인 기술이 등장하는데 바로 토렴이라는 것이다.
펄펄 끓는 뜨거운 국물을 밥에 부었다 따라내고 부었다 따라내서 밥의 온도를 올리는 토렴이라고 한다.
당시 커다란 가마솥에 많은 양의 밥을 미리 지어 다 퍼둔 뒤 손님이 오면 그때그때 국밥을 내야 했는데 보온 밥솥은 당연히 없었고 따라서 밥은 곧 찬밥이 되어버렸다.
이때 국물로 밥을 먹기 좋게 데워주는 방법이 바로 토렴이었다.
토렴은 지금도 일부 국밥집에서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주막 국밥의 시초는 개장국으로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서민들에게 만만한 고기가 개였기 때문이다.
농업 국가였던 조선에서 소를 불법으로 도축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돼지는 사람과 먹는 게 겹치기에 사람 먹을 것도 귀했던 시절 돼지 키우기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만만한 게 닭과 개인데 닭은 비교적 크기가 작기에 주막 같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려면 수십수백 마리까지 필요하기도 했을 것이다.
한 마리 한 마리 일일이 잡기에는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다.
이때 사람이 남긴 찌꺼기도 먹고 놔두면 큰 병 없이 알아서 크는 개가 가장 만만한 고기였다.
그러다 조선 말기 나라가 점점 무너지고 소를 금하는 정책도 점차 무너지며 소고기의 민간 소비가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였던 청나라에서는 개를 동료로 여겼기에 개고기 식용을 피했는데 때문에 조선에서도 개고기를 먹는 것이 야만적이라는 인식이 돌았다고 한다.
드디어 등장하는 국밥계의 제왕 설렁탕....
이런 인식 변화와 더불어 소의 머리 내장 등의 부산물이 충분히 나오는 한양에서 곧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 바로 설렁탕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쟁 물자 보급을 위해 식용 소고기 생산 정책으로 육우들이 대량 생산되자 소의 부산물들은 더욱 넘치고 설렁탕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얘기는 설렁탕은 백정과 옹기장이들이 함께 만든 즉 천민들의 음식이었기에 소위 점잖은 사람 특히 양반 출신이었던 이들의 체면으로는 백정이 운영하는 설렁탕 집에 가서 먹기가 좀 그랬다고 한다.
그런데 설렁탕이 워낙 맛있어서 집으로 배달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소 뼈를 구하기 어려워졌을 때 부산의 피난민들이 미군 부대에서 나오던 돼지 뼈로 설렁탕을 끓인 것이 지금은 부산 돼지국밥이라는 유력한 설이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각종 고기들의 생산량이 늘어나며 국밥은 각 지역별로 특색을 가지며 지금의 다양한 밥들로 발전해 왔다.
'지식을 넓히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날은 왜 생긴거지? 다른 나라도 복날이 있나? 있다면 뭘 먹지? (0) | 2022.07.29 |
---|---|
양두구육(羊頭狗肉) 너는 무슨 말이니? (0) | 2022.07.28 |
적을 무장해제 시키는 무기... 귀여움이 무기가 되는 과학적 이유 (0) | 2022.07.27 |
영국인이 만들면 맥도날드 햄버거도 맛없다? 영국음식은 왜 맛이 없을까? (1) | 2022.07.26 |
추억 깃든 공중전화 부스가 사라진다... 활용법은? (0) | 2022.07.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