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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물(?) 위스키의 탄생

by ##$$??<<>> 2022.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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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과 함께 잔에 담긴 위스키

위스키는 영국 북부에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유래한 증류주이다.

프랑스에서 유래한 증류주인 브랜디와 더불어 대표적인 증류주로서 양주의 대명사이다.

한 때 생명의 물이라고 불렸던 양주의 대명사 위스키.

재밌는 위스키의 탄생(?)에 관해서 알아보자.

 

양조주, 증류주 (?)

 

옛날에 유럽에서는 양조주랑 증류주 이런 게 있는데 양조주는 와인이나 맥주 이런 식으로 발효를 시켜서 만드는 술을 먹었다.

그러다 어느 때 증류 기술이 들어오면서 높은 알코올 도수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

그전에는 술은 전부 양조주였다.

양조주는 발효주라고도 말을 하는데, 효모가 과일이나 곡물을 발효를 시켜서 술을 만든다.

그래서 로마, 그리스에는 와인 있고 독일쪽은 곡물로 만든 맥주 그런 걸 먹다가 증류 기술이 들어오면서 알코올 함량이 확 높아진다.

증류 기술은 아랍 쪽에서 들어왔고 관련 기술도 더 많이 발달을 했다.

증류주는 처음에는 약으로 쓰긴 했는데 그 이름이 생명의 물이라고 불렀다.

왜냐면은 전쟁을 하거나 아니면 어디 일을 하다가 베이거나 상처가 나면은 그게 곪아서 파상풍에 걸리거나 곪거나 해서 그 부위를 자르거나 심지어 사람이 죽거나 했다.

그런데 그 증류주를 바르면 곪지도 않고 낫는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소독용이었다.

당시에는 세균이라는 거 존재 자체도 모를 때 증류주는 바르는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물이었다.

당시의 술은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증류해낸 것이었으므로 보드카와 같이 맑고 투명하면서 상당히 강한 보리향을 내는 술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크통

 

근데 오크통에는 어떻게 숙성시키게 됐는데?

 

18세기에 이르러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분쟁에서 잉글랜드가 승리하면서 위스키의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서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자금을 얻기 위해 각종 규제를 신설하였고 그중에는 과세 정책도 있었다.

특히 이들이 제조하는 술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단속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 제조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은 당시에 유일하게 합법이었던 셰리 와인통에 몰래 숨겨두었다가 주변의 눈을 피해 몰래 판매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와인통의 원료인 떡갈나무의 진액과 통에 흡수되었던 셰리 와인이 위스키 원액에 스며들어 호박색을 띠는 빛깔과 향기를 머금게 되었다.

이것이 원래의 위스키보다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점차 주변 국가로 확산되었다.

 

주변 국가로 널리 퍼지게 된 계기는?

 

세금 문제로 스코틀랜드에서 밀주로만 판매되던 위스키는 1822년에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다 합쳐진 유나이티 킹덤의 왕인 조지 4세에 의해 밀주에서 벗어났다.

조지 4세가 스코틀랜드 지역에 가서 위스키를 먹어보고 위스키를 런던에서도 먹을 수 있게 세금 낮춰줄 테니까 정식 등록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갔다.

1823년부터 법안을 준비하고 조지 스미스라는 사람이 정식면허를 취득하는데 그게 합법적인 스코틀랜드 위스키의 합법적인 시작이다.

그래도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다음에 잉글랜드 영국 쪽에만 있는 지방 토석주였다.

그런데 이게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는 되는 일이 있었다.

그때까지 유럽 사람들은 위스키는 잘 모르고 와인이나 와인의 증류주인 코냑 브랜딩 이런 걸 먹고 있었다.

그런데 필록세라라고 하는 진딧물에 의해 유럽에 있는 포도나무가 거의 전멸을 했다.

그래서 와인 브랜드나 꼬냑 이런 게 없어져 위스키가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상으로 간단하게 위스키의 역사와 대중화의 과정을 알아봤다.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위스키는 과음보다는 향을 즐기는 정도로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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